‘이제 금방 왔는데 내쫓는다고?’박윤찬이 카톡에서 얘기한 내용은 설영준이 그녀를 보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역시, 사실이 아니었어...’송재이의 마음속에서 서러운 기분이 몰려왔다. 그녀가 뒤돌아 병실을 나서려고 문을 열었는데 마침 노크를 하려던 박윤찬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고 박윤찬이 웃으며 말했다.“왔어요?”이윽고 그는 얼굴에 있던 웃음이 굳어지더니 물었다. “왜 울어요?”설영준 때문에 화가 난 송재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그녀는 그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그런데 박윤찬이 눈치 없이 콕 집어 말했다. 그녀는 어색하게 코를 킁킁거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감기인가 봐요. 대표님한테 옮길까 봐 저 먼저 갈게요...”박윤찬은 그녀를 불러세우려고 했지만 이미 그의 옆을 지나 빠르게 자리를 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녀의 뒷모습만 보였다. 잠시 후, 시선을 돌린 박윤찬은 설영준의 시선이 여전히 문 앞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박윤찬은 이미 다 안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여기까지 온 사람 왜 또 쫓아내고 그래요, 그럴 필요 없잖아요?”“내가 가라고 하면 바로 가잖아요. 다른 때에는 이렇게 말을 잘 듣지도 않으면서!”설영준은 굳은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설영준은 하루만 수액을 맞았다. 한편, 송재이는 병원을 떠나 바로 아파트로 왔다. 그녀는 아파트를 꼼꼼히 다 뒤졌지만, 자신의 일정 노트를 찾지 못했다. 집에 두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허탕이었다. 그녀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 휴식하면서 머릿속에는 노트를 어디에 잃어버렸을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수 없이 하나 새로 바꿔야 했다. 밤에 송재이는 아파트에 묵었고 아무리 뒤적거렸고 잠이 오지 않았다. 전에 설영준과 함께 여기서 생활할 때 사소한 일상들, 불꽃이 튀던 날들을 생각하다가 낮에 병원에 갔을 때 이상하리만큼 자신을 향해 날을 세우던 그를 생각하면 그녀는 도대체 무엇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알지 못했다. 왜인지
설영준은 병이 완전히 완쾌된 건 아니었다.하지만 그는 퇴원을 고집했고, 의사 선생님은 그의 퇴원을 동의하지 않았었다.오후, 박윤찬이 또 사무실로 그를 찾아왔다.설영준은 창백한 안색으로 양복 차림을 한 채, 책상 앞에 앉아 진지하게 서류를 정리했다.“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박윤찬이 그에게 말을 건네자, 설영준은 손에 들고 있던 필을 멈칫하더니 차갑게 그를 바라봤다.“그쪽이 뭘 안다고 그래요?”“재이 씨는 갔어요?”박윤찬이 이어서 물었다.그 말에 설영준은 팔을 들고 있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 현재의 그는 송재이 이름만 들어도 짜증이 났다.“여긴 왜 왔어요?”설영준은 그녀의 일에 대해 더는 듣고 싶지 않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박윤찬이 그의 맞은편에 다리를 포개며 앉았다.“원래는 공적인 일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왔어요. 근데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때마침 어떤 여자랑 부딪혔거든요. 그 여자가 저한테 어떤 일들을 털어놓았는데, 설영준 씨가 흥미를 느낄만한 이야기 일 듯하네요. 어떤 일인지 듣고 싶지 않아요?”현재 기분이 좋지 않은 설영준은 박윤찬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저한테 말해주려거든 얼른 하고, 아니면 그냥 가세요. 저 아직 할 일이 많거든요.”“송재이 씨 관련된 일입니다. 남도에서 누군가가 재이 씨를 좋아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어때요? 듣고 싶지 않아요?”그 말에 설영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박윤찬을 쳐다봤다.박윤찬은 그 모습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담담히 웃어 보였다.“누군가가 재이 씨 같은 분을 좋아한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죠. 하지만 재이 씨를 좋아한다는 그 사람, 아마 설영준 씨가 싫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네요…”박윤찬은 말을 마친 뒤 자신의 표현이 어딘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사실 그 누가 송재이를 좋아한다고 해도, 설영준은 전부 다 싫다고 느껴질 것이니 말이다.그는 점점 어두워지는 설영준의 모습을 보고 더는 뜸을 들이지 않기로 했다.박윤찬은 조금 전 변호사 사무실 아래층에서 문예슬을 만났다고 직접적으
설영준은 문예슬의 그 속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그는 자신이 방현수가 송재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게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지 않았다.게다가 박윤찬도 문예슬이 셔츠를 전달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변호사 사무실까지 찾아가 송재이와 방현수의 소식을 이야기 해줬다고 했었다.박윤찬과 설영준은 서로 관계가 좋은 친구라 할 수 있다.하여 박윤찬이 알고 있다면, 설영준도 당연히 알고 있다고 보면 된다.즉, 이건 문예슬이 일부러 퍼뜨린 것이다.하지만 방현수와 송재이가 남도에서 만나 영화를 같이 본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비록 방현수가 올린 영화표 두 장 사진에 송재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설영준은 거기에 송재이도 있었을 거라 믿고 있다.그렇다, 그는 지금 질투하고 있다.누군가가 살짝만 도발해도 그 질투는 쉽게 폭발해 버릴 것이다.조금 전 박윤찬 앞에서는 애써 담담한 척 했지만, 그것은 사실 폭풍우가 오기 전 고요함과도 같다.…송재이가 학교 쪽 주임에 의해 사무실로 불려 갔다.주임은 그녀에게 정교한 VIP 입장권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학교 본부와 광고 투자자가 조직한 고급 무도회 입장권이었다.논리적으로 말하면, 막 입사한 신입 교사는 그런 곳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하지만 원래 초청을 받았던 선생님 중 한 분이 아이가 아파 참석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하여 그 기회는 송재이에게 주어지게 되었다.사실 송재이는 이런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자리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주임이 그녀를 생각해서 입장권을 준 이상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무도회에 참가하는 사람은 모두 다섯 명의 선생님이었다.그중에서 세 명은 송재이 보다 조금 어렸다.이런 자리에 초대를 받았으니,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들은 가는 내내 기분이 좋은지 재잘재잘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송재이도 그녀들의 즐거운 분위기에 점차 물들어갔다.이때 그 여자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꺼냈다.“이번 광고 투자자 중에 설한 그룹도 있대요. 설영준 대표님도 참석하시려
이왕 무도회장 파티에 초대된 거니, 송재이는 쭈뼛거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게다가 누군가 그녀에게 춤을 추자고 요청했고, 마침 시간도 맞아떨어진지라 자연스럽게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송재이는 이 모든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다만 한 곡이 끝나갈 무렵,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차가운 시선을 느꼈다.그녀는 틈틈이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을 찾으려고 시도 때도 없이 옆을 두리번거렸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다.노래 한 곡이 다 끝나갈 때쯤, 맞은 편의 남자가 그녀에게 물었다.“혹시 연락처 좀 줄 수 있을까요? 이제 시간 날 때 다시 데이트 신청하려 하는데…”“죄송하지만 이 사람 시간 없어요.”송재이가 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그녀 뒤로 웬 남자가 걸어오며 그녀의 답을 가로챘다.깜짝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려보니 설영준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것이었다.지난번, 방현수와 춤을 출 때도 설영준에게 들켰었다.이번에는 다른 남자와 춤을 추면서 또 그에게 들켜버린 것이다.송재이는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며 그를 모르는 척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설영준이 한 발짝 다가서며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송재이는 설영준의 손아귀 힘을 느낄 수 있었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한편, 맞은편의 남자 또한 설영준이 경주에서 부자이자, 설한 그룹의 대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설영준과 실제로 처음 만나는 사이였고, 설영준의 아우라에 단번에 압도되었다.하여 그는 얼른 핑계를 대고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그렇게 그 자리에는 설영준과 송재이 두 사람만 남았다.송재이는 멍하니 스테이지 쪽에 서 있다가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설영준을 바라봤다.“여긴 어떻게… 왜 또 당신인 거야?”그녀는 진심으로 놀랐지만, 설영준의 귀에는 그 말이 좋지 않게 들렸다. 경주에 있을 당시, 그는 진심으로 그녀를 쫓아냈었다. 그녀는 그의 말대로 아직 입원 중인 그의 건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순순히 떠났다.하여 설영준은 그녀가 그 말만 기다린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을 했다.그래야만 그
송재이는 점점 설영준의 성격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꼈다.그녀는 설영준만 만나고 나면 좋았던 기분도 그에 의해 다운되곤 했다. 게다가 설영준 앞에서는 자신이 문제투성이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녀는 왠지 모르게 서러웠고,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게 좋지 않은 감정이 티 났다.하지만 그녀는 절대로 서럽다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입술을 꼭 다물고 얼굴을 반대편으로 돌렸다.설영준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는 이를 꽉 깨문 채 그녀를 놓아주며 양손을 주머니에 넣었다.그 시각, 그는 어쩔 수 없는 무력함과 표출해 낼 수 없는 화를 느꼈다. 그녀는 설영준과 헤어진 뒤로 모든 게 잘 풀리는 듯 보였다.새로운 도시로 가 다시 일자리와 묵을 집을 찾고, 다른 남자와 데이트도 하고, 신중하게 박윤찬의 선물도 골랐다. 어떤 선물을 했든 간에, 어쨌든 속으로 박윤찬이라는 존재를 생각했다는 거 아니겠는가?다른 남자들한테는 그토록 친절한데, 그의 앞에서는 모든 게 형식적인 것만 같았다.설영준은 예전에 송재이가 자신을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믿어왔었다.비록 송재이가 그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녀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속일 수가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아니다.그녀에 대한 자신감이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니 말이다.설영준은 속이 터질 것만 같았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저려났다.아무 말 없는 그의 모습을 본 송재이는 그에게서 격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아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하지만 설영준이 그녀를 꽉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그의 손끝은 살짝 차가웠고 송재이는 그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그녀가 그의 손을 뿌리치려 하자 설영준은 다짜고짜 그녀를 문 쪽으로 끌고 갔다.하이힐을 신고 있던 송재이는 그의 끌어당김에 하마터면 비틀거리다 넘어질 뻔했다.그래도 다행히 설영준이 바로 그녀를 부축해주었다.한편, 송재이와 같이 파티에 참석한 몇 명의 동료들은 스테이지 옆에서 과일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것은 송재이에게 있어 매우 친숙한 호르몬의 기운으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그녀는 그 기운 때문에 전에 그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그러나 결국은 자신이 독에 중독되어 버렸음을 깨달았었다.그녀는 자신의 허벅지를 힘껏 꼬집으며 정신을 차리려 했다.설영준이 그녀의 목에 키스하며 옷을 찢기 시작하자, 그녀는 발을 들어 그를 차버리려고 했다.“설영준, 저리 꺼져! 난 네가 싫단 말이야.”그러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설영준은 그녀의 종아리를 꽉 조였다.그는 야릇한 자세로 송재이를 쉽게 통제하며 그녀를 가지고 놀았다.송재이는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붉어졌다.“미쳤어?”“미치긴 누가 미쳐? 송재이, 너 죽으려고 작정했지?”그는 그녀가 다른 도시에 사는 건 허락할 수 있어도, 그녀가 다른 남자들과 막 만나고 다니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그게 방현수든 박윤찬이든, 아니면 조금 전 송재이와 같이 춤을 추던 남자든 설영준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질투는 진정되지 않았다.“설영준, 우리 지금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네가 뭔데 날 간섭해? 예전의 너는 아무렇지 않게 주현아랑 만났잖아. 게다가 정아현과도 썸씽이 있었고 말이야. 네 자체가 쓰레기이면서 지금 날 간섭해? 넌 단 한 번도 나에게 미안해한 적이 없었어. 그리고 지금은 우리 다 성인 아니야? 단지 서로서로 즐기는 것뿐인데 너무 재미없게 굴지마!”즐긴 다라…하!예전의 설영준은 확실히 그녀를 가지고 놀았다. 하지만 현재는 서로 처지가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과거에 그들이 맺었던 관계는 확실히 진지하지만은 않았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입에서 그걸 직접 들으니 왠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특히 송재이가 지금 저항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너 아까 무대에서 다른 남자랑 춤추며 잘 웃었잖아. 지금도 그렇게 어디 한번 웃어봐. 왜 안 웃는 건데?”송재이:“…”그녀는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지금의 설영준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변해
설영준은 단 한 번도 길가에서 파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일단 본인이 이런 걸 먹지 않으니, 다른 사람에게 당연히 사준 적도 없다.만약 평소였다면 그는 이런 음식은 건강에 해롭다고 송재이를 나무랐을 것이다.하지만 현재 상황은 다르다. 길가의 음식뿐만 아니라, 될 수만 있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그녀에게 따주고 싶었다.10분 뒤, 그가 다시 호텔로 올라가 방문을 열어보니, 송재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욕실에 들어가 보아도 그녀는 없었다.그렇다, 그녀는 가버린 것이다.설영준은 그녀의 마음을 돌렸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그는 침대에 앉은 채 테이크아웃한 음식을 옆으로 치우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송재이에게 전화를 걸려던 찰나, 주소록에 있는 그녀의 이름을 보고 그는 갑자기 멈칫했다.설영준은 그녀가 이유를 찾아 자신을 따돌리고 기회를 틈타 도망갔다고 생각했다.그런 게 아니라면 그녀 혼자서 조용히 있고 싶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분명히 그러할 것이라 생각했다.아까 샤워를 해 젖었던 설영준의 머리는 이제 완전히 말라 있었다.그는 짜증 나는 듯 머리를 움켜쥐었다.설영준은 그렇게 한참 동안 그 커다란 VIP룸에 혼자 앉아 있었다.한편 송재이가 현재 다니고 있는 음악 학원에서는 매년 투자를 유치 활동을 하고 있다.설영준은 이런 분야에 원래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녀와 관계를 맺으려고 일부러 그들의 광고주가 되었다.당시 총장은 설영준이 올해 투자하기로 약속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서 펄쩍 뛸 뻔했다.하여 VIP 초청장을 설영준에게 준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당시 설영준은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그는 송재이가 괜히 자기 때문에 그 장소에 참석한 줄로 오해하고 우쭐대는 게 싫었으니 말이다.하여 원래는 한 번 가서 보고 바로 돌아가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꾸밀 줄 누가 알았겠는가!비록 아무런 노출도 없었지만, 파티장에서의 그녀는 너무도 아름답고 예뻤다.그것은 남자들이 좋아
이원희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그녀의 한마디에 송재이는 눈시울이 붉어졌다.원래는 눈물이 없는 그녀였지만, 그 순간은 왜인지 모르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송재이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목구멍이 막혀 아무런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그녀의 모습에 이원희 또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이원희가 손을 뻗어 송재이를 다독이자, 그녀는 이원희 품에 안겨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송재이는 작은 소리로 흐느끼다가 점점 대성통곡했다.그녀도 자신이 왜 우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말 못 할 고통이 북받쳐 오르는 느낌이었다.다행히 울고 나니 아까보다는 많이 좋아진 듯했다.이원희 또한 더는 묻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안은 채 위로했다.그날 밤, 송재이는 잠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크게 운 탓인지 예상외로 빠르게 잠이 들었다.아마 진짜로 지쳤나 보다.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겹치면서 그녀의 인내력은 극에 달했다.송재이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떴을 때였다.그녀는 꼬박 11시간을 잤다.그래도 푹 자고 일어나니 모처럼 기분은 상쾌했다.하지만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눈은 마치 복숭아처럼 부어있었다.한편, 박윤찬이 남도로 출장을 와 때마침 송재이가 근무하는 학교를 지나쳤다.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점심에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송재이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박윤찬이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눈은 왜 그래요?”그녀도 오늘 자신의 모습이 사람을 만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이윽고 송재이가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별거 아니에요. 아마 어젯밤에 감기 걸렸나 봐요.”박윤찬은 그 말을 반신반의했다.그러다가 어제 설영준이 남도에 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물었다.“혹시 영준 씨 만났어요?”설영준이라는 이름에 송재이는 물컵을 들고 있던 손을 자신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물을 하마터면 바닥에 쏟을 뻔했다.게다가 설영준만이 송재이의 기분을 이렇게 만들 수 있었